음식의 역사

파슬리·바질의 역사

info-knowledge-1 2025. 9. 26. 16:00

서양 허브 문화의 기원

 허브는 인류가 가장 오래전부터 생활 속에 활용해온 식물 중 하나입니다. 특히 파슬리와 바질은 음식의 풍미를 더할 뿐 아니라 의학적·종교적·상징적인 의미까지 지닌 대표적인 허브입니다. 이 두 허브의 역사를 살펴보면 단순한 조미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파슬리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파슬리는 지중해 지역에서 기원한 허브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파슬리를 단순한 식재료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파슬리를 신성한 식물로 여겨 장례식이나 경기와 관련된 의식에서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경기에서 우승자에게는 월계관 대신 파슬리로 만든 화관을 씌워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파슬리는 사후 세계와 연결된 상징으로 여겨 무덤 장식에도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풍 벽화 속 인물들이 파슬리 화관과 잎을 들고 있는 장면

 로마 제국으로 넘어오면서 파슬리는 점차 식재료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로마인들은 파슬리를 다양한 음식에 곁들였으며, 특히 고기를 먹을 때 소화 촉진과 입 냄새 제거용으로 즐겨 사용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파슬리의 식탁 활용은 로마 시대의 음식 문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파슬리의 중세와 근세 유럽

 중세 유럽에 들어서면서 파슬리는 의학적 효능으로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허브는 약초로 분류되었고, 파슬리는 이뇨와 소화 촉진, 해독 작용에 효과적인 식물로 기록되었습니다. 수도원 정원에서는 다양한 약초와 함께 파슬리가 자주 재배되었고, 민간에서도 일상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근세에 들어 유럽 전역에서 파슬리는 대표적인 식탁용 허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재료가 되었으며, 지금도 서양 요리에서 기본적인 장식과 풍미를 담당하는 허브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바질의 신성한 기원

 바질은 인도와 아시아 지역에서 기원한 허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바질을 ‘툴라시’라고 부르며 신성한 식물로 여겨왔습니다. 힌두교에서는 바질이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제물로 쓰였고, 집 안에 바질을 키우는 것이 복을 가져온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적 의미 때문에 바질은 단순한 향신료를 넘어선 정신적 상징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바질은 중요한 식물로 사용되었습니다. 파라오의 무덤 속에서 바질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사후 세계로의 안전한 여정을 돕는 상징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질의 로마와 유럽 전파

 바질은 로마 제국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로마인들은 바질을 향신료로 요리에 활용했을 뿐 아니라 사랑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바질을 선물하면 애정과 호의를 표현하는 의미가 있었으며, 이는 후대 유럽 문화에도 일정 부분 이어졌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바질을 약용 식물로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소화 장애, 감염 예방, 염증 완화 등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약초학 서적에도 바질의 효능이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질의 향을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여겼습니다.

르네상스와 근대의 허브 문화

 르네상스 시대는 예술과 과학뿐 아니라 식문화에도 혁신이 이루어진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바질과 파슬리는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의 요리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바질이 토마토와 함께 대표적인 재료로 자리 잡으며, 오늘날 파스타와 피자의 기본 풍미로 이어졌습니다.

 한편 파슬리는 프랑스 요리에서 필수적인 허브가 되었습니다. 파슬리, 타임, 베이리프, 로즈마리를 묶은 ‘부케 가르니’는 지금도 서양 요리에 깊은 향을 내는 기본 조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신대륙으로의 전파

 대항해 시대 이후 파슬리와 바질은 신대륙에도 전해졌습니다. 유럽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허브를 가져와 재배하면서, 파슬리와 바질은 미국과 남미에서도 일상적인 재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멕시코 요리에서도 바질과 비슷한 풍미의 허브가 사용되며, 미국 가정에서는 파슬리가 기본 장식 허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 식문화 속 파슬리와 바질

 오늘날 파슬리와 바질은 세계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허브가 되었습니다. 파슬리는 신선한 샐러드, 수프, 스튜, 고기 요리에 빠짐없이 등장하며 장식과 풍미를 동시에 담당합니다. 바질은 이탈리아 요리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요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태국 바질과 같은 변종은 독특한 향으로 현지 요리를 대표하는 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에 들어 허브의 효능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파슬리에는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들어 있어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바질은 항산화 성분과 항염 작용으로 웰빙 식단에 자주 포함됩니다.

맺음말

 파슬리와 바질은 단순히 식탁을 장식하는 재료를 넘어,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해온 식물입니다. 파슬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신성함과 죽음을 상징했으며, 바질은 인도에서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허브로 숭배되었습니다. 이후 유럽과 전 세계로 확산되며 사람들의 일상과 식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심코 파스타 위에 올려진 바질 잎이나 스테이크 옆에 놓인 파슬리 가지를 보지만, 그 속에는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문화, 신앙, 식습관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