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역사

커리의 역사

info-knowledge-1 2025. 9. 11. 08:00

인도에서 시작된 커리의 기원

 커리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는 요리이지만, 그 뿌리는 인도의 깊은 역사와 문화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향신료를 활용한 요리가 발전해 왔습니다. 인더스 문명 시기부터 인도 사람들은 강황, 생강,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식생활에 사용했습니다. 당시 커리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향신료를 조합하여 만든 소스나 국물 형태의 요리는 이미 일상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커리라는 명칭은 남인도 타밀어의 '카리(kari)'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양념한 소스' 혹은 '밥과 함께 먹는 요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인도 사람들에게 커리는 특정한 한 가지 요리가 아니라, 향신료와 재료가 어우러진 다양한 형태의 음식을 통칭하는 말이었습니다.

향신료 무역과 세계로의 확산

 커리가 세계로 퍼져 나간 데에는 인도의 풍부한 향신료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인도는 오랫동안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고, 후추, 정향, 육두구, 계피 같은 귀한 재료들이 인도에서 생산되어 아시아와 중동,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국가들은 인도의 향신료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16세기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 열강들은 인도 무역항을 거점으로 삼아 향신료를 대량으로 수입했습니다. 당시 향신료는 단순히 요리에 쓰이는 재료를 넘어, 약재와 보존제 역할까지 하며 귀중한 무역 상품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도의 다양한 조리법과 향신료 조합이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커리가 세계 요리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향신료 교역 덕분이었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대와 커리의 재탄생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커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인들은 현지의 향신료 요리에 매료되었고, 이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인도에서 전해진 다양한 커리 요리가 소개되었지만, 원래의 복잡한 향신료 배합 대신 단순화된 형태가 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국에서는 커리가 상류층 식탁에 오르며 빠르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영국 요리는 비교적 단조롭고 담백했기 때문에, 진하고 강렬한 맛의 인도 커리는 신선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취향에 맞추어 인도식 커리는 점차 변형되었고, 그 과정에서 ‘커리 파우더’라는 편리한 형태의 제품이 탄생했습니다.

커리 파우더의 등장과 대중화

 커리 파우더는 여러 가지 향신료를 미리 섞어놓은 혼합 향신료로, 영국에서 커리를 간단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발명품이었습니다. 원래 인도에서는 지역과 가정마다 각기 다른 향신료 조합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해진 ‘정답’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이를 통일된 레시피처럼 규격화하여 커리 파우더라는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이 커리 파우더 덕분에 커리는 영국 사회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었고, 군인과 상인들이 세계 곳곳으로 이동하면서 커리 문화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식 커리’라는 새로운 장르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치킨 티카 마살라와 같은 요리는 인도 전통 요리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영국에서 발전한 ‘퓨전 커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 전해진 커리

 커리는 영국을 거쳐 일본에도 전해졌습니다.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에 일본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커리를 접하게 되었고, 이후 일본식 카레라이스가 등장했습니다. 일본식 카레는 밀가루와 버터로 만든 루(roux)를 사용하여 걸쭉하고 달콤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인도의 전통 커리와는 매우 다른 형태였지만, 일본의 입맛에 잘 맞아 빠르게 대중화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식민지 시기와 교류를 통해 한국에 카레 문화를 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식 카레가 가정식 요리로 자리 잡았고, 학교 급식에서도 자주 등장하면서 익숙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인도·태국·네팔 등 다양한 커리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친숙한 카레는 일본식 변형을 거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세계 속의 커리

 현대에 들어 커리는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글로벌 요리가 되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지역마다 고유한 커리 전통이 이어지고 있고, 영국에서는 커리가 ‘국민 음식’이라고 불릴 만큼 일상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식 카레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대중적인 메뉴가 되었고, 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커리 역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도, 영국, 일본을 상징하는 인물과 전통 커리 요리가 함께 그려진 삽화.

 커리는 단순히 한 나라의 음식이 아니라, 역사 속 교류와 변화를 통해 발전한 세계적인 요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향신료 문화, 영국의 식민지 역사, 일본의 재해석이 어우러져 지금의 다양한 커리 모습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맺음말

 커리의 역사는 단순한 음식 이야기를 넘어 인류 문명의 교류와 무역, 식민지 역사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도의 향신료에서 시작해 영국의 변형을 거쳐 일본과 한국까지 전해진 커리는, 음식이 단순한 식문화를 넘어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한 접시의 커리에는 수천 년의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